[첫째날]
은퇴 기념으로 우리 부부는 모처럼 큰맘을 먹고 멕시코 여행을 하기로 하고 떠나기 반년 전부터 열심히 조사하다가 뚜이요투어를 알게 되었다. 칸쿤을 들러 멕시코시티로 가기로 정하고 뚜이요투어와 연락을 하다가 과나후아토 투어를 준비 중이라고 해서 그룹 투어를 신청했다. 스페인어도 못하면서 버스 타고 복잡하게 다녀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던 마당에 뚜이요투어의 기존 투어에 대한 후기 들을 살펴보니 평가도 좋아서 망설임 없이 신청하였다.
투어 출발하는 날 아침 집결지인 천사상에서 8인승 SUV를 준비해서 나온 주니 가이드 님과 그룹여행 파트너인 모녀와 서로 만나서 우리 다섯 사람은 오전 9시경에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칸쿤에서의 그룹투어는 주로 현지가이드에 의해서 대부분 스페인어로 진행되고 영어로 드문드문 설명을 해줘서 답답하게 지내다가 역시 한인투어를 만나니 마음이 편하여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여행하면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코로나 이후 한인 투어업체들이 고사 상태라 뚜이요투어는 각자 본업이 있는 멕시코 교포분들께서 의기투합하여 짬이 나는 대로 현재는 한인 여행객들을 상대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상업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았고 엄마를 따라온 애교 만점의 꼬마 아가씨와도 서로 금방 친해져서 여행 내내 활력소가 되고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 뚜이요투어 소규모 그룹투어의 매력이 이런거였구나.
1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여 테오티우아칸 남쪽 입구에 도착해서 길거리에서 카페 데 오야 한 잔과 옥수수떡으로 군것질을 하다가 주니 가이드님이 깜짝 준비한 멕시코 전통 복장인 화려한 무지개 색깔의 판쵸를 입고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 위한 솜브레로를 눌러 쓰고 멋진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들뜬 마음을 안고 드디어 이 유명한 피라미드 유적지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현지투어들은 보통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 근처의 북쪽 입구로 들어가서 그 근처를 본다고 하는데 뚜이요 투어는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3km에 걸친 죽은 자의 거리를 2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걸으면서 기념사진도 찍고 설명을 들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고대 도시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뚜이요투어에서 준비한 무선 헤드폰을 착용하고 귓가에 우리나라 말로 선명하게 설명해 주는 흥미진진한 고대 역사의 현장 속으로 빠져들어 가다 보니 약간 나도 모르게 제물로 바쳐지는 죽은자의 마음과 동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초기 왕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뱀의 신전은 마야 문명인 치첸잇사에서도 뱀을 숭배한 신전의 조각들을 볼 때 유사성이 흥미로왔으나 테오티우아칸 초기 문명발생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아직 분명치 않다고 한다.
역사학자들과도 교류하고 있다는 주니 가이드 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죽은자의 거리가 비록 지금은 황폐하고 말랐으나 문명 번성기 때는 물이 차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죽은 자의 길! 인신공양을 위한 포로들이 신전의 제물로 바쳐지기 전에 심장이 터질 듯한 심적 고통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물길을 헤쳐가며 힘들게 걷는 길.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폐허가 되어 주변에 남아있는 주거지 및 시장 등 상업지, 사원 및 귀족들의 거주지를 마주치면서 생각에 잠긴다. 근래에 와서 그 당시 인신공양 제물로 식인풍습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역사학계에서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몰락한 문명을 마주하다 보니 고대나 지금이나 심지어는 인신공양까지 하면서 경외하던 각종 형태의 신이라는 그 들의 절대적인 존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주변에 단백질 공급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테오티우아칸의 최대 번성기 때는 20만 명이나 되는 도시인들이 연간 제물로 바쳐진 5만 명의 포로에 의한 식인문화만으로는 영양섭취가 충분치 않았을 텐데 점차 가뭄까지 겹친다면 더 이상 문명을 지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상상에 빠져본다. 대자연의 수레바퀴야말로 종교로도 다스릴 수 없는 절대적인 섭리라는 엄숙함에 고개 숙이며 거대한 고대 신전인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북쪽 3번 출구로 나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땡볕 더위에 시달린 몸을 추스르고 온천 휴양지 똘란똥고로 출발했다.
똘란똥고로 향하는 도중에 뚜이요투어가 현지식으로 제공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맛있는데 뚜이요투어 노하우가 담겨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 그 다음엔 뚜이요투어가 엄선한 동네 과일가게를 들러서 신나게 이 과일 저 과일 맘대로 시식했다. 우리는 황금향 맛이 나는 멕시코 귤과 꿀수박 그리고 마치 볶은 맛이 나는 생땅콩 등을 사서 만족감에 미소를 지으며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똘란똥고를 향해서 한창 가고 있는데 아뿔싸! 내 휴대폰이 없다. 휴대폰으로 과일가게를 사진으로 담고 정신없이 시식 과일들에 혼이 빠져서 휴대폰을 가게에 놓고 온 모양이다. 다시 전화를 해보니 받지를 않고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 중에 휴대폰 분실은 거의 사망에 준하는 사고가 아닌가! 멕시코에서 휴대폰을 분실하면 대부분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는 수 없이 주니 가이드 님이 다시 과일가게로 차를 돌렸는데 멀리서 우리 차를 보고 과일가게 할머니가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살았다! 내 휴대폰을 비닐봉지에 잘 담아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오랫동안 맺어진 뚜이요투어와 과일가게의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내 휴대폰을 돌려준 것이다. 지금도 후기를 쓰려니 그 당시의 안도감과 감동이 생생하게 밀려온다. 주니 가이드님! 과일가게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이 후기를 읽으시는 여행자 분들께서는 앞으로 과일가게 들르셔서 맘씨 좋은 할머니네 과일 무지하게 맛있으니 많이 팔아주시기 바랍니다.
똘란똥고는 상류에 위치한 동굴에서 온천수 원천이 흘러나와서 계곡으로 흐르는데 그 온천계곡을 따라 물막이 계단식으로 단차를 주어서 여러개 수영장들을 만들어 놓았는데 석회암 성분 온천이라 푸른색을 띠고 있어서 가히 형언하기 어려운 장관을 연출한다. 내가 선녀도 아닌데 동굴과 계곡에 철철 흐르는 선명하게 파란 온천물에서 수영을 즐기는 호사를 평생 상상이나 하였을까? 지금까지는 낙원은 복숭아나무와 꽃밭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위에 화려한 꽃들은 기본이고 계곡 온천에서 마음껏 수영하다 보니 여기가 진짜 낙원이다.
뚜이요투어는 바로 이 온천계곡 옆에 동화책에나 나오게 생긴 호텔과 유일하게 미리 예약을 할 수 있는 계약을 맺어 놓았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계곡에 위치한 맛있는 멕시칸 현지 레스토랑에서 모두 다른 음식을 시켜서 나누어 먹고 계곡 옆에서 감자와 마시멜로를 구어먹으며 오순도순 정감을 나누면서 캠프화이어를 하다가 장작불을 보고 있으니 눈꺼풀이 저절로 무거워지면서 행복하고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그 동화 같은 숙소에 가서 바로 단잠에 빠졌다.
[둘째날]
12시가 체크아웃이라 일어나서 호텔에 짐을 둔 상태로 SUV에 올라타고 똘란똥고의 또 다른 명물인 테라스식 야외온천으로 향했다. 일반 관광객들이 오기 전에 계단식 천수답 모양의 그림 같은 야외온천 들을 우리끼리만 전세 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맘껏 물장구를 치는 맛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리라. 한가한 주변 선인장 계곡과 앞산의 거대한 협곡을 바라보며 수평과 수직으로 연결돼서 사방에서 폭포처럼 온천물이 흘러내리는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다 보니 내 나이가 40년은 젊어진 것 같았다. 직접 보고 몸으로 체험해 보기 전에는 사진으로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풍경이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계속 거기에서 지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호텔에 가서 씻고 정오에 다음 여정인 멕시코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는 과나후아토로 떠났다. 똘란똥고여 영원히~언젠가 다시오마.
과나후아토로 가는 길에 또 한번 뚜이요투어 비장의 현지식당을 들러서 점심을 먹는다. 이 식당은 선인장 농장을 운영하는 집인데 주인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현지인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맛있게 먹었는지는 역시 비밀이지만 이 집에서 주니 가이드 님이 멕시코 선인장 술인 풀케를 종류별로 사주는 바람에 얼큰해졌는데 뿔케가 마실 때는 순하고 맛있는 막걸리 같은데 은근히 취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해롱거리면서 과나후아토로 향한다. 만화영화 코코의 배경이 된 도시인데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도시 전체의 모든 건물이 알록달록한 레고블럭처럼 생겨서 나도 만화의 주인공이 된다. 도시를 구경하자니 눈이 바쁘다. 맛있는 식당들과 즐비한 예쁜 가게들, 거리의 악사들 그리고 즐기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소란과 웃음소리들이 어우러져서 사방이 시끌벅적하다. 똘란똥고가 낙원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이곳이 진정한 낙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낙원이라면 술과 진수성찬과 노래소리 그리고 당연히 흥에 겨운 이웃들이 함께해야 되지 않겠는가? 같이 즐기고 봐야겠다고 생각하니 발이 바빠진다. 그러나 수많은 예쁜 가게들과 맛있는 레스토랑 들을 하루에 다 섭렵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여기도 다음에 반드시 다시 와야 하는 곳으로 노트에 적어두기로 한다.
저녁 식사 후에 그 유명하다는 과나후아토 야경을 보기 위해 주니가이드 님을 따라서 푸니쿨라를 타고 삐삘라 전망대로 향하였다. 그런데 와~~이 풍경은 도대체 뭐지? 이태백이 다녀간들 이 광경을 제대로 묘사하랴? 감탄사만 남발하면서 사진찍다가 내일 무조건 다시 와야지 하고 결심하며 내려왔다. 사진으로도 다 표현이 안되고 글로도 재주가 부족하여 한마디도 적을 수 없으니 궁금한 분들은 직접 와서 보실 수밖에 없다.
뚜이요뚜어가 과나후아토 중심에 예약해 놓은 호텔은 또 한 번 깜짝 놀라게스리 성모성당이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중세 귀족의 성을 리모델링한 느낌의 호텔이었다. 방도 너무 넓은 데다가 테라스로 나가는 창문도 영화에 나오는 나무문이 안팎으로 이중으로 되어있어서 고풍스럽고 기품까지 갖추고 있어서 우리는 왕과 왕비가 되어 잠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날]
오전까지 과나후아토 관광을 하고 정오에 체크아웃 예정이라 뚜이요투어에서 추천한 관광지들을 중심으로 아침부터 열심히 구경을 나섰다. 과나후아토는 성모성당 앞 광장을 중심으로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을 따라서 다니다 보면 키스골목, 후아레스극장, 우니온 정원, 그리고 여기저기 전공별로 도시에 산재해 있는 과나후아토 대학, 이달고 시장 등 중요한 유명 관광 명소들이 도보로 10 여분 정도 이내에 위치해 있다. 아침에 노상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관광객들도 있고 포장마차에서 아침식사를 즐기는 현지인들을 보니 어제께 저녁에 여기저기서 거리의 악사들인 까예호네아다의 세레나데와 함께 길거리 주점들 마다 북썩이고 떠들썩했던 분위기와는 또 다른 차분한 소도시의 정겨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자동차들은 주로 예전에 관개수로로 사용하던 지하터널로 다니기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에 관광객들이 붐벼도 걸어다니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과 벽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생가 미술관, 예전의 곡물창고를 리모델링한 주립박물관은 반드시 가보기를 권하는데 오전 10시에 개장하므로 다른 곳을 먼저 보고 시간을 맞추어 오다 보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정오에 궁전 같은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이달고 시장으로 가서 뚜이요투어 비장의 마지막 점심으로 현지 식당들이 우글우글한 시장 푸드코트에서 사진 메뉴와 가이드의 설명으로 여러 가지를 주문하여 형제자매처럼 친해진 우리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꿀맛 같은 식사를 즐겼다. 점심을 먹고 이달고 시장의 기념품 가게들에서 쇼핑하고 차량으로 이동하여 마지막으로 삐삘라 전망대에 올라 과자와 사탕 색깔 블록처럼 보이는 평생 살고 싶은 낙원, 과나후아토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멕시코시티로 향하여 아쉬운 여정을 마쳤다. 아디오스 메히코~